온라인에서만 보던 웹툰 캐릭터와 세상을 오프라인에서 직접 만날 수 있다면 어떨까. 네이버웹툰에서는 이 상상을 구현하고 있다. 2023년 한 해만 팝업 스토어에 17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등, 웹툰의 재미가 화면을 넘어 오프라인으로도 퍼지는 중이다. 네이버웹툰의 13년 차 디자이너 정혁구는 <유미의 세포들> 팝업 스토어, 미국 코믹콘 오프라인 부스, 태국의 웹툰 체험 부스 디자인 등을 담당하며 팬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전하는 오프라인 경험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재미가 몰입이 되고, 몰입이 좋은 작업물로 이어집니다." 한때 만화가를 꿈꾸기도 하고, 네이버웹툰의 오랜 팬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그에게 일의 의미는 다름 아닌 '재미'에 있다. 때로는 오프라인 작업이 힘이 들기도 하지만, 새벽부터 부스 입장을 기다리는 팬들에게 재미를 전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고 말한다. 재미있어서 시작한 일이 다른 누군가의 재미로, 그리고 다시 일의 원동력으로. 그렇게 재미가 점차 증폭되고 있다.
한때 만화가를 꿈꾸던 학생이었어요. 매일 연습장에 만화를 끄적거리던 그런 학생이요. 지금은 웹툰 학과도 있고 직접 웹툰을 그리는 학생들도 많지만, 그 당시의 저는 만화를 전공할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대신 디자인을 전공하고 라인에서 라인프렌즈의 IP를 활용해 제품을 만들거나 오프라인 스토어를 디자인을 하는 일을 맡았어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네이버웹툰에 입사하여 운명적으로 다시 만화와 함께 일할 수 있게 되었네요. 지금은 Brand X팀에서 미국 Merchandise Shop, 코믹콘, 일본이나 태국의 체험 부스, 한국 팝업 스토어 등 글로벌 서비스 웹툰을 위한 온오프라인 브랜드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일이 되면 괴롭다는 말이 있는데요. 제게 일은 마치 ‘덕질’ 같아요. 지금 하는 일들이 너무 재밌고, 재밌으니까 몰입하게 되고, 몰입하니까 더 좋은 결과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만화의 본질도 팬들에게 재미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모든 작업에 앞서 ‘어떻게 하면 팬들에게 가장 큰 재미를 줄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해 봐요.
이를 위해 작품에 달린 모든 댓글을 읽어보는 건 기본이고, 작가님의 인터뷰를 찾아보기도 하고 팬카페에 가입하기도 하죠. 팬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표정을 활용하여 굿즈를 디자인하거나, 오프라인 공간을 구성할 때 참고합니다.
웹툰은 온라인 서비스를 바탕으로 하지만 오프라인 경험도 중요하게 보고 있어요.
실제 공간에서 캐릭터와 함께 사진을 찍고 캐릭터가 사는 집을 방문하고 캐릭터가 쓸 법한 상품을 구매하는 이 모든 것들이 팬들에게 잊히지 않는 경험이 된다고 생각해요.
온라인으로는 실현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경험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오프라인 작업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임팩트’입니다. 2018년에 진행한 <유미의 세포들> 팝업에서는 거대한 출출 세포가 신촌역 역사 위에 올라가 있는데요.
그때까지 역사 위에 이런 큰 구조물을 올려본 적이 없었다고 해요. 작품 안에서 출출 세포는 제일 힘도 세고 크니까, 이걸 실제로 구현하면 임팩트가 있을 것 같았어요.
<유미의 세포들> 팝업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이미지 중 하나인 만큼 많은 분께 큰 임팩트로 남은 사례가 아닐까 생각해요.
2021년에 진행한 네이버웹툰 OFFLINE을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네이버웹툰에서 최초로 시도한 도심형 테마파크였어요. 당시의 최고 인기 작품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것이 주요 컨셉이었죠.
강남에 있는 4층짜리 건물을 웹툰 체험관, 방탈출관, 포토존, 굿즈샵 등으로 채워야 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전에 시도해 본 적 없는 대규모 프로젝트라 네이밍, 로고, 공간 디자인부터, 작게는 게임에 들어갈 영상, 굿즈까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정말 많았어요.
웹툰 오프라인 경험의 시작이자 이정표가 될 프로젝트이니 부담도 컸죠.
큰 규모의 프로젝트인 만큼, 한 명이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디렉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제가 손을 들어 해보겠다고 했어요.
웹툰은 직군과 직급에 상관없이, 이 프로젝트를 가장 잘 이해하고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사람에게 역할을 부여하는 조직이라 제 제안을 마다하지 않고 서포트를 해주셨어요.
<신의 탑>, <여신강림>, <호랑이형님>과 같은 당시 인기 최고의 작품에 맞는 게임과 영상, 피규어까지 하나하나 직접 만들거나 디렉팅을 했어요.
작업량보다도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만들 수 있을까’와 같은 고민에 초점을 맞추느라 바빴던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온라인에 남겨주신 반응들을 꾸준히 찾아봤는데요.
‘웹툰다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굿즈까지 고퀄리티였다’고 해주신 것들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사용자의 반응을 현장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 오프라인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고민 끝에 만들어 낸 것들을 100% 즐겨주시는 그 순간이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순간이라고 할까요.”
직장인으로서 흔한 일은 아닌데 짜릿한 순간이 많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오프라인 공간 준비를 하다 보면 항상 마감과의 싸움이거든요.
오픈하는 날 새벽에 몽롱한 상태로 현장을 마무리하는데 팬분들이 기웃거리시면서 들어오시려고 하는 일이 종종 있어요. 1등으로 들어오고 싶어서, 부스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서 그러시는 거죠.
그런 모습을 보면 몽롱했던 정신이 확 들면서 진짜 멋있게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굿즈들 열도 다시 맞추고 튀어나온 실밥도 정리했던 것 같습니다.
웹툰 특성상 다양한 국가에서 사랑을 받다 보니 현장에서 해외 유저를 만날 기회도 많은데요.
막연하게 느껴졌던 글로벌 인기를 직접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더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요즘 팬분들은 다 아세요. 작업자가 얼마나 진심을 다해 만들었는지요. 오프라인 작업이 힘든 점도 있지만 팬들의 반응을 현장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매력적인 일 같습니다.
고민 끝에 만들어 낸 것들을 100% 즐겨주시는 그 순간이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순간이라고 할까요.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그 프로젝트에 맞게 제 라이프스타일을 바꿔보는 편인데요.
오프라인 공간을 기획하는 일을 시작하면 다른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에 찾아가 보거나 이번 공간에 찾아올 법한 나이대가 가장 자주 가는 공간을 가보는 식이죠. 성수동이나 도산 공원 쪽은 정말 안 가본 데가 없이 다 가본 것 같아요.
웹툰이 만드는 공간은 새로운 형태가 많아 기존의 공간에서 직접적인 참고는 어렵지만, 특정 나이대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공간의 특징이나, 굿즈의 가격대 등에서 힌트를 많이 얻고 있습니다.
가서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꼭 뭔가를 사보는 편인데요. 인기가 많거나 신기한 제품이라면 꼭 사서 직접 써보려고 해요. 써봤던 브랜드에 나중에 연락을 해보기도 하고, 새로운 굿즈를 만드는데 영감을 주기도 하고요.
덕분에 집은 온갖 물건으로 가득 차게 되었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끝이 무엇일지 고민하면서 결과물로 만들어 나가고,
나아가 회사의 방향에도 도움이 될 때 일을 잘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웹툰에서 일하면서 정말 다양한 분들과 함께 일하고 있어요. 회사 내부의 동료들은 물론이고, 작가님들, 오프라인 공간 제작업체, 굿즈 생산업체와 같은 회사 밖의 분들과도 협업해야 하죠.
웹툰의 해외 법인 동료들, 해외에 있는 업체와 협업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되었고요.
제가 생각하는 협업의 기본은 ‘신뢰’인 것 같습니다.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일에 임하고 있는지는 상대도 알아요. 이런 경험을 몇 년에 걸쳐서 조금씩 쌓아 나가는 것, 이것이 협업의 비결이라면 비결이에요.
신뢰는 작은 일이 조금씩 모여서 쌓이는 것 같은데요. 협업 상대를 설득할 때 말로만 설명하기보다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여러 시안을 준비하는 편입니다.
디자이너는 비주얼로 보여주는 사람이다 보니 말로 하는 것보다 디자인을 보면서 의견을 나누는 것이 더 편하고 빠른 것 같아요. 해보기 전에는 막연히 별로라고 생각했던 시안도 직접 해보면 괜찮은 경우들도 많았고요.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지체 없이 바로 도움을 요청하는 편인데요. 여러 명이 협업할 때는 혼자 마음을 쓰는 것보다 빠르게 도움을 구하거나 사과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잘못이 있을 때는 천 명이 모인 단체 메신저 방이어도 ‘죄송한데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편인데요.
그때 안 된다고 하는 분은 단 한 번도 못 봤던 것 같아요. 저랑 함께 일하는 분들이 저를 믿고 일을 맡기는 것처럼 저도 제 동료들을 신뢰하니까 이렇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제 기준의 일을 잘하는 사람은 끝을 보는 사람이에요. 무슨 일을 하든지 끝까지 파고들어서 더 좋은 방향이 없을 때까지 해내는 사람이요. 끝이라는 게 디테일의 끝일 수도 있고 아이디어의 끝일 수도 있는데요.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끝이 무엇일지 계속 고민하면서 그걸 결과물로 만들어 나가고 또 더 나아가서 회사의 방향에도 도움이 될 때 일을 잘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웹툰에 그리고 제 주변에 이렇게 일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요. 동료들을 보면서 ‘나도 더 나아져야지’, 또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서로의 성장에 도움을 주고받고 있어요.
아직도 웹툰에서 해보고 싶은 일이 끝이 없는데요. 제가 요즘 빠져 있는 작품인 <화산귀환>을 가지고 멋진 오프라인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고요. 또 언젠가는 기존의 문법에서 완전히 벗어난 새롭고 즐거운 웹툰 테마파크를 만드는 일을 함께해보고 싶습니다.
Published Feb.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