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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로 디자인하다

마치 근사한 스튜디오에서 찍은 듯한 프로필 사진, 90년대 감성의 미국 졸업사진이 2023년 SNS를 뜨겁게 달구었다. 단 10장 남짓한 사진으로 내 모습을 ‘힙’하게 재구성해주는 스노우 AI 카메라 앱이 이끈 유행이었다. 11년 차 디자이너 이근실은 Foodie, B612 같은 필터 카메라 앱부터 AI프로필, 이어북과 같은 AI 서비스까지 입사 이후 줄곧 카메라 서비스를 담당하며 글로벌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최근 그의 컴퓨터 화면은 마치 개발자의 것이기라도 한 듯 프롬프트로 가득 차 있다. 프롬프트를 통해 AI가 이미지를 그려 내도록 만드는 일은 기존의 디자인 과정과는 전혀 다른 접근방식이 필요했지만, 그는 직접 손으로 그리지 않을 뿐 시각적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는 점은 동일하며, 디자인의 영역이 확장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맨땅에 헤딩' 같았던 도전은 가히 열풍이라고 할 만한 스노우 카메라 서비스의 인기로 보상받고 있다. 그렇게 그는 디자인과 기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성공의 순간을 포착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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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후 쭉 카메라 서비스 디자인을 맡아 오셨다고요.

저는 SNOW AI 서비스의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11년 차 디자이너 이근실입니다. 2013년 네이버에 입사해서 카메라 서비스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 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라인 카메라의 UI 디자인을 맡았던 것이 첫 시작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필터를 디자인하려면 포토샵에서 설정값을 하나하나 캡쳐해서 보내 드리면 개발자 분께서 또 그걸 하나하나 구현을 해 주시곤 했었어요. 필터 하나 넣는 것도 어려웠던 시절이었지요. 이후에 카메라 앱 시장이 점점 커져 갔고, 기술도 발전하면서 다양한 서비스들을 만들게 되었는데요. 특히 SNS가 이미지 중심으로 넘어가면서 사진에 대한 니즈가 다양해졌는데, 저희는 그러한 니즈에 맞춰서 내 모습을 더 예쁘게 나오게 한다거나, 음식을 더 맛있어 보이게 하는 등 기능을 특화해서 B612나 Foodie 같은 서비스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어떤 일을 담당하시나요.

현재는 AI 아바타, 프로필, 이어북과 같은 SNOW AI 서비스의 레시피를 제작해서 유저들에게 보다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AI 프로필’에 내 사진을 넣었을 때, 어떤 무드의 프로필로 보여줄 것인지, 어떤 포즈를 설정할 것인지, 혹은 유저와 얼마나 유사하게 할 것인지 등의 가이드를 만들어내는 것인데요. 기존에 제가 해오던 디자인과는 또 조금 다른, 새로운 영역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디자인이라 하면 손으로 무언가를 그리는 모습이 주로 떠오를 텐데, 현재 저희 팀에서 하고 있는 일은 이미지를 직접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 프롬프트(명령어)를 통해서 AI가 이미지를 그려 내도록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팀 이름인 ‘프롬프트 디자인’이 곧 제 역할을 설명해 주고 있어요.

레시피가 무엇인지 좀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만드는 ‘레시피’라는 것은 말 그대로 요리 레시피와 같은 개념입니다. 하나의 요리가 완성되기까지 여러가지 재료와 조리 방법이 필요한 것처럼, 어떤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명령어와 설정값의 조합을 ‘레시피’라고 표현하는 것인데요. 현재 저희는 생성형 AI 이미징 기술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텍스트를 입력해서 이미지를 생성시키는 기술인데, 덕분에 개발자의 영역이었던 프롬프트 작업을 보다 손쉽게 디자이너가 직접 수행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 기술을 활용해서 텍스트를 이렇게 저렇게 조합해 보면서 우리가 원하는 이미지를 생성해 낼 수 있는 레시피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디자인’의 영역이 기술로 인해 더욱 확장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AI 아바타 레시피 기획 과정

AI 아바타 레시피 기획 과정

필터부터 AI 프로필, 이어북까지, 정말 많은 사랑을 받은 서비스를 만들어 오셨는데요. 그중 기억에 남는 업무 경험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작년(2022년) 연말 미국에서 출시된 AI 초상화 앱이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때 저희에게도 미션이 생겼어요. 크리스마스 전까지 3주 안에 AI 아바타 서비스를 만들자는 것이었는데요. 스노우도 새로운 변화에 빠르게 합류해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처음엔 기존에 세팅된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서 속도를 내 보는 전략이 더 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AI가 서양인에게 최적화해서 학습되어 있었다 보니, 그대로 갔다가는 한국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어떻게든 우리 정서에 맞게 리메이크를 해서 제작해 보자, 그 마음으로 몰입했습니다. 불가능할 것 같던 기간이었지만 모두가 밤낮없이 작업을 해서 레시피 테스트 개수만 수천 개가 넘어갔었고요. 결국 3주만에 성공적으로 서비스를 출시했습니다. 출시와 동시에 폭발적인 반응이었고, 보름만에 누적 다운로드 20만 건 이상을 기록했어요. 저희의 전략이 맞았다, 아시아권에서 처음으로 이렇게 AI 아바타 서비스를 해냈다 하는 생각에 많이 벅찼습니다.

정말 어려운 미션이었는데, 끝까지 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었다면요.

폭풍 같았던 3주 동안 체력적으로는 힘들었죠.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서 만든 서비스로 유저들이 재밌어 하실 것을 생각하면서 팀원들과 함께 정말 즐겁게 만들어 갔어요. 결국 사람들이 제가 만든 서비스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그걸로 모든 것이 보상되는 것 같아요. AI 쪽을 담당하게 되면서, 제가 잘 몰랐던 분야이다 보니 인지과학 책들을 보기 시작했거든요. 한 책에서 인간은 원래 바쁘면 행복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냥 바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의미 있다고 생각될 때, 그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저에겐 그 의미가 곧 사용자들의 즐거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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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생성형 AI가 뜨거운 화두입니다. 이 분야로 들어오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사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AI 디자인을 맡게 된 건 아니었어요. 돌이켜 보면 늘 저는 가만히 있었는데 사업부도, 업무도 계속 바뀌었고, 그런 변화들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저는 그저 그 파도를 타고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AI도 제게 밀려온 파도 중에 하나였습니다.
새로운 도전은 늘 두렵기 마련이지만 지나온 프로젝트들을 잘 해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동료들과 함께하면 못 해낼 건 없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입사 전부터 ‘사용자 대해서 이렇게까지 고민을 하는 회사는 대한민국에 네이버밖에 없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이런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분들일까, 어떻게 하면 이런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 것일까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속에서 함께 그런 사용자 서비스를 만들어 내고 싶단 생각으로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데요.
AI 아바타를 만들 때도 당시에 생성형 AI 이미징 기술 자체가 이전에 없던 것이다 보니, 제대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잘 없었어요. 그런데 프로젝트에 함께했던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동료들 모두와 함께 집단지성을 이용해서, ‘내가 어디서 이걸 알아 왔다’, ‘이렇게 해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오더라’ 하면서 서로 맨땅에 헤딩해 가며 얻은 정보를 같이 나누고 배우면서 프로젝트를 일궈 나갔고, 끝내는 성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인데요. 저에게도, 동료들에게도 쉽지 않은 첫 시도였지만, 이런 동료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두렵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성공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든, 여행을 가든, 앞에서 누가 스노우를 쓰고 계시거나 저희가 만든 프로젝트가 SNS에서 유행이 되고 있을 때, ‘아, 우리 서비스 성공적이었구나’ 하는 걸 체감하게 됩니다. 그만큼 성공 여부를 판단할 때 기본적으로는 MAU나 판매 지표를 기준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데요.
거기서 나아가 제 개인적으로는 질적인 판단을 중요시합니다. 사람들이 SNS에 AI 이미지를 올리는 양상과 맥락을 열심히 관찰하는 것인데요. SNS 게시물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표현된 부분을 좋아하고, 어떤 점을 아쉬워하는지 확인하는 식으로 정성적인 조사에 공을 들이는 편이에요. 그런 걸 보면서 다음에는 어떻게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지를 구상하곤 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얻은 인사이트로 기획하신 서비스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AI 프로필도 그렇게 탄생한 서비스예요. 처음 출시했던 AI 아바타에서 제일 많이 쓴 콘텐츠 카테고리를 보니까 ‘베이직’이었어요. 맨 앞에 배치된 카테고리라는 걸 감안하더라도요. 그 후 SNS 업로드 양상을 살펴보니, 그 안에서도 제일 실제 사진다운 흑백 사진 사용률이 제일 높았어요. 연령대는 20~30대가 60~70% 였고요. 그걸 보니 ‘20~30대 유저들이 이런 베이직한 사진 느낌을 원하는구나’라는 인사이트를 얻었고, 다음으로는 AI로 프로필 서비스를 해보자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렇게 스노우에 AI 프로필 서비스도 출시되면서 AI 아바타의 지표를 두 배 이상 뛰어넘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질적인 관찰이 성공으로 이어진 값진 경험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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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피를 찍는다는 건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런 마음을 잘 담아낼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일을 잘한다는 건, 열심히 공들인 걸 부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한 개의 레시피를 가지고도 몇 주 동안 테스트해서 나가기도 하는데, 제가 아무리 공들여 잘 만들어 놨다고 하더라도 동료가 만든 게 더 좋다면 제 거를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요.
AI 기술이 엄청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오늘의 기술이 내일과 달라요. 그런데 오늘의 기술만 고집하다 보면 내일의 기술을 쓰고 있는 경쟁사에 밀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 아집에서 벗어나고 동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때로는 내 것을 과감하게 부술 수 있는, 그런 마음가짐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이미 동료들이 그런 분들이시기 때문에 저 스스로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가 만든 프로덕트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였으면 하시나요.

저는 셀피를 촬영하는 행위 자체가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마주하고, 나아가 나의 모습을 이렇게도 바꿔 보고 저렇게도 해 보면서 하나의 놀이 수단처럼 흥미로워한다는 건, 자신에게 애정을 갖고 있다는 걸 보여 주는 것인 것 같아요. 그래서 유저들이 저희 어플을 사용하시면서 그렇게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최근에 어떤 레시피가 나와 더 닮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변 분들에게 제 AI 이미지를 공유해 보면 지목한 순위가 다 다른 거예요. 재밌게도 저와 애착관계가 높을수록 더 예쁜 걸 골라주시더라고요. ‘본인이든 타인이든 얼굴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관점에 따라 이미지가 다르게 보이는구나’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AI 프로필을 만들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보다 내 자신이 더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 그런 부분을 보여 줄 수 있는 서비스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앞으로도 저희가 만드는 프로덕트들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더욱 잘 담아낼 수 있는, 그런 서비스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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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Feb.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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