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의 디자인 직군은 '설계' 직군으로 불리운다. 기획된 프로젝트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내는 역할을 넘어,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의 경험 플로우 전반을 설계한다는 의미를 담아서다. 산업디자인 박사 과정 후 네이버로 합류한 6년 차 UX디자이너 김은진은 동영상 검색, 디자인 시스템 구축, 사전 서비스 개편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거치며 그 '설계'의 의미를 체감해 왔다. 그리고 지금 그는 PC메인 개편 프로젝트를 담당하며 경험 설계를 넘어 더 큰 방향성을 그려가는 프로덕트 오너로까지, 설계자로서 스스로의 역할을 한 번 더 확장해 가고 있다.
김은진에게 네이버의 디자이너로서 가장 난이도 높은 일이 무엇인지 묻자 '사회적 가치'라는 화두를 꺼낸다. 메인 화면에서 자극적인 콘텐츠 비중을 높여 사용자 지표를 높일 수도 있겠지만 네이버에서는 장기적으로 유저에게 좋은 것인지, 사회적으로 가치를 높이는 방향인지를 비중 있게 고민하고 있다고 하며, 그 적정선을 판단하는 것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디자이너로서 의미 있는 지점이라고 강조한다. 가치를 디자인하는 일이기에.
저는 대학원에서 디지털 색채를 전공했습니다. 디자이너가 그래픽 작업을 할 때 포인트 컬러나 브랜드 컬러와 같은 것이 주어진 상황에서 그래픽 요소나 이미지를 어떻게 보정하는지 분석해서, 그걸 최대한 모방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연구를 했었어요. 어떻게 보면 직접 디자인을 전공했다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디자인을 하는 걸 보고 ‘이걸 어디까지 컴퓨터가 모방할 수 있을까, 자동화할 수 있을까’ 하는 방법론을 연구해 온 건데요. 저는 그 작업이 너무 재밌었고, 이런 새로운 GUI를 가장 많이 만드는 곳이 네이버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곳에 오게 됐습니다.
네이버의 디자이너는 주어진 특정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닌, 어떤 서비스 플로우의 의미 정의부터 그것이 기술적으로, 시각적으로, 경험적으로 구현될 수 있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기획해 나가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설계자로 표현되지 않나 생각해요.
사실 처음에는 이미 네이버가 만들어 둔, 또 사람들에게 알려진 피처들이 워낙 많다 보니, 새로 무언가를 만들고 정의하기보다는 지표들을 잘 분석해서 기존의 경험들을 개선하는 역할이 주가 될 거라 생각했어요.
특히나 제가 분석적인 방법론을 공부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실제로 네이버에 와서 저한테 주어졌던 역할들은 훨씬 컸어요.
기존 서비스를 더 좋게 만드는 걸 넘어서, 오히려 기존의 것들을 정답으로 여기지 않고 완전히 빈 곳이라 가정해야만 했죠.
어떤 사용성을 담아야 할지, 어떻게 사회적 가치를 녹여낼 수 있을지, 정말 새롭게 모든 걸 그려가야 하는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 메인 개편 서비스를 맡으면서 저의 역할은 사용자 경험 플로우를 설계하는 것을 넘어, 프로덕트의 전체 사이클이나 더 큰 방향성까지 함께 기획할 수 있는 프로덕트 오너로서의 역할까지로 확장된 것 같고요.
단지 저에게만 국한된 역할이 아니라, 저희 팀 자체가 이런 역할을 도전 받는 팀인 것 같습니다.
국내 사전 서비스 개편 프로젝트가 기억나요. 사전은 네이버의 터줏대감 같은 오랜 서비스인데, 사용자 조사를 하면서 인상적인 부분을 발견했어요. 사전이 네이버에 처음 가입하게 되는 진입 서비스로도 기능한다는 것이었죠.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나 다른 어학 공부를 해야하는 연령대에 들어서면 네이버 사전을 쓰게 되고, 그때 단어 저장 등을 위해 네이버 계정을 처음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걸 발견하게 된 것인데요. 사전이 이렇게 누군가에겐 네이버의 첫인상이 된다고 한다면, 이걸 좀 더 잘 바꿔 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네이버 사전은 풍부한 DB를 확보하고 있었고 스펙적으로도 이미 너무나 훌륭한 서비스였기 때문에 비주얼과 사용성 측면을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편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비주얼적으로는 보다 세련되면서도 아기자기한, 쓰는 맛이 있는 UI로 업데이트하고, 사용성 측면에서는 보다 빠르고 직관적인 검색을 위해 검색 도구를 정비하고, 찾은 단어를 쉽게 저장하고 암기할 수 있게 단어장 기능을 강화, 또 그 단어장과 연계된 학습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재구성하게 되었어요. 가시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특히 사전이 깊이 있는 지식과 노하우가 많이 필요한 서비스이다 보니, 서비스 담당자 분들과 협업하면서 배운 점도 굉장히 많았었던 경험으로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모든 서비스를 메인 화면 안에 네이버라는 하나의 그림으로 담아내는 과정을 통해 네이버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지금 저희 팀에 주어진 과제는 ‘통합적인 네이버 경험’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모바일, 워치, PC 등 다양한 디바이스에서의 사용자 경험이 유연하게 잘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인데요. 지금까지 네이버 메인은 대중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잘 정리해서 보여주는 지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용자 개개인에게 더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관심사, ‘내’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더 잘 보여주는 화면. 모두 같은 화면을 보는 것이 아닌 개개인에게 맞춤인 플랫폼으로 변화하려고 하는 거죠. 어떤 언론사를 구독했다거나, 자주 쓰는 서비스들만 모아서 바로가기로 추가해 뒀다거나 하는 식으로 나의 취향을 네이버 어딘가에 담아 놓았을 때, 이 취향이 워치를 사용하든 모바일을 사용하든 디바이스를 넘나들며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경험을 설계해 가고 있습니다.
저는 메인을 생각하면, 네이버가 가지는 가장 큰 이미지는 ‘가장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주 트렌디하고 엣지 있는 것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은 보편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많은 사용자들을 포용할 수 있기 위해서요. 이번에 PC 개편 스펙을 좀 더 디테일하게 정리하면서 개발자 분들과 얘기 나눴던 게 기억나요.
아시다시피 이제 Internet Explorer는 서비스가 거의 완전히 종료된 상태인데요. 현재 주로 쓰이는 일반적인 개발 언어로는 IE를 지원하기가 사실상 어렵습니다.
IE로 네이버를 접속하는 수가 하루 3만 명이 채 안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번 개편을 준비하면서 네이버가 IE 서비스 지원을 포기해도 될까 하는 논의가 있었는데,
그래도 네이버는 그렇게 해선 안 된다는 게 저희의 결론이었어요.
무조건 우리는 마지막까지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네이버 라이트홈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광고라든지 복잡하고 무거운 기능을 다 걷어내고 메일과 같은 주요 서비스로의 진입점과 기본 기능만 남겨둔 버전인데요.
사실 오히려 공수가 더 드는 작업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는 건 맞지 않다 생각했어요. 이메일이 비밀번호 같은 걸 찾는 데만도 많이 쓰이잖아요.
IE를 쓰는 3만 명 중 누군가에게 여전히 네이버는 중요한 창구가 될 수 있는 거니까요.
조금 더 번거로워지더라도 최대한 많은 사용자들이 꼭 필요로 하는 것들은 끝까지 지원해 주고 싶다는 생각, 제가 본 네이버 분들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생각하고,
이게 프로덕트에도 자연스레 녹아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가 정말 좋은 프로덕트를 만들고 있는지 스스로 자신 있게 대답하기 위해서 늘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대중적인 니즈에 앞서 가치 중심의 결정들을 서비스에 담아내야 할 때, 그걸 사용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풀어내는 것이 항상 제일 어려운 부분이라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참여하고 있는 ‘추천·구독’판 프로젝트에서도 비슷한 고민이 있어요. 기존에 편집 담당자가 하나하나 직접 판에 노출될 콘텐츠를 선정하는 방식을 벗어나, 알고리즘으로 콘텐츠를 자동 필터링하고 선별한 콘텐츠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판을 바꾸게 되었는데요. 필터링 기준을 느슨하게 가져가고 자극적인 콘텐츠 노출 비중을 높이는 게 사용자 지표 측면에서는 분명 유리할 수 있겠죠. 하지만 ‘이게 정말 사회적으로 가치가 있을까? 더 좋은 사회, 더 좋은 인식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까?’하고 어떤 선이 적정선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것들을 로직에 담아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사용자들에게 잘 전달하고 설득하는 것이 항상 가장 어려운 숙제라고 생각하고요. 우리가 정말 좋은 프로덕트를 만들고 있는지 스스로 자신 있게 대답하기 위해서 늘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자주 쓰지는 않더라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계정을 각각 3개 정도씩은 무조건 가지고 있어요. 일부러 구독을 엄청 많이 하는 계정, 구독 좀 덜 하는 계정, 이런 식으로 페르소나를 여러 개 둔다고 할 수 있겠네요. 사용자의 페르소나마다 피처를 주는 방식이 좀 다르잖아요. 자주 안 쓰는 사람들은 이렇게 오고 헤비 유저한테는 이렇게 오고. 그래서 일부러 캐릭터를 여러가지로 구분해서 계정을 만들고, 다양한 피처들을 보려고 합니다.
‘아쉬움’이요. 정말 잘했지만, 근데 그래도 그때 이걸 더 잘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을 항상 갖고 있는 것이요. 내가 어떤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고 해서 ‘이제 끝!’하고 넘기는 사람들보다는 어떤 아쉬움을 계속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 다음에 항상 더 잘하는 것 같고 더 성장하는 것 같아요. 남이 나한테 ‘잘했어, 충분해.’라고 말하는 것과 별개로, 스스로가 그런 기준들을 가지고 있는 것, 뭔가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 건 나쁜 건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저는 생각하고, 그게 더 잘하게 만드는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Published Feb. 2023